“앎”이란 무엇인가?

다양한 사용

“안다”라는 말은 다양한 용도로 사용됩니다. 예를들어 “당신은 유재석을 아십니까?”라고 물어본다면 대부분 안다고 할 것 입니다. 그런데 박명수에게 “당신은 유재석을 아십니까?”라고 했을 때의 ‘안다’는 의미가 다르죠. 다른 예로는 “너 자전거 어떻게 타는지 알아?”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생각해보죠. 실제로 스스로 자전거를 탈 줄 안다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자전거를 탈 줄은 모르지만 그 원리에 대해서는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철학자들은 “앎”에 대해 정확하게 정의내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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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에 대한 고전적 정의

플라톤이 쓴 책인 <테아이테토스>에서는 “지식의 성립조건”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 책의 내용에서 비롯한 지식의 조건에 대한 전통은 다음과 같습니다.

정당화된 참인 믿음은 지식이다. Knowledge is Justified True Beli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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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명제 P는 참이다.
  2. 주체 S는 P를 믿는다.
  3. S가 P를 믿는 것이 정당화된다.

‘참’은 거짓이 아니란 것입니다. 그리고 믿는다는 것은 말 그대로 누군가 어떤 사실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정당화된다’는 S가 P를 믿기에 정당한 증거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

이해를 돕기 위해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1. 지금 시간은 1시 정각이다. (참)
  2. 민수는 지금 시간이 1시 정각이란 것을 믿는다. (믿음)
  3. 민수는 시계가 1시 정각을 가리키는 것을 보았다. (정당화)

다음을 통해 “민수는 지금 시간이 1시 정각이란 것을 안다” 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플라톤의 앎의 조건은 “Justified True Belief”의 줄임말인 JTB조건이라 불린다. 이후로 ‘앎’은 JTB조건과 필요충분조건의 관계에 있다고 믿어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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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충분조건

‘P Q’(P이면 Q이다)가 참일 때  P를 ‘Q가 성립하기 위한 충분조건’이라고 부르며, 반대로 Q를 ‘P가 성립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라고 부릅니다.

다음 문장으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초콜릿을 먹으면 행복하다” (초콜릿 행복)

  •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초콜릿이면 충분합니다.
  • 행복하기 위해서는 초콜릿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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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어 문제

미국의 철학자 에드먼드 게티어(Edmund Gettier, 1927~2021.03.23)는 “정당화된 참인 믿음은 지식인가?(Is Justified True Belief Knowledge?” 라는 논문을 통해 플라톤의 “앎”의 조건에 모순이 있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어떤 상황들은 JTB조건을 충족하더라도 지식이라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서연이와 민준이가 입사 시험을 보고 있다. 그 와중에 민준이는 면접관이 서연이를 뽑을 거라고 말하는 것을 엿들었다. 그리고 민준이는 서연이의 주머니에 동전이 10개 들어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래서 민준이는 이렇게 생각했다: “일자리를 잡는 사람의 호주머니 안에는 동전이 10개 있다.”

그런데 사실 알고 보니 면접관이 실제로 뽑기로 결정한 사람은 민준이였다. 그리고 민준이 자신은 몰랐지만 자신의 호주머니 안에도 동전이 10개 들어 있었다. 그래서 민준이는 자신의 생각이 맞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사례에서 민준이의 생각은 JTB 조건을 모두 만족한다. 하지만 이를 “앎”이라고 하는 것은 부당해보인다. \

이에 대해 학자들은 다양한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 기존 조건에 4번을 추가해야한다.
    • 정당화 과정에 오류가 없어야한다.
    • 운적인 요소는 제외해야한다.
  • 3번 조건인 정당화 “믿음에 합당한 인과관계”로 바뀌어야한다.

반면, 이런 모순 자체를 받아들이자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 운으로 아는 것도 앎이다.
  • 앎은 매번 바뀌기에 정의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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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대주의 VS 정합주의

“앎”에 대한 논의는 “무엇이 믿음을 정당화하는가?”라는 인식론적 문제에 다다르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주장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뉘는데요. 바로 토대주의(foundationalism)와 정합주의(coherentism) 입니다. 토대주의는 모든 지식에는 그것의 토대가 되는 근거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반대로 정합주의는 토대 지식 같은 것은 없고, 어떤 믿음을 정당화하기 위한 체계가 있을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

이는 더 나아가 “무엇이 정당한가?”라는 도덕과 윤리 문제까지 이어집니다. 이에 대답하기 위해 심리학과 사회학의 관점을 사용하곤 하는데요. 정답은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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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